1987년은 광역연고지가 실시되던 시기로 당시 유공코끼리는 인천/경기 지역을 연고지로 배정받아 해당 지역에 있는 여러 도시를 순회하여 홈경기를 개최했기 때문에 안양을 연고지로 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안양을 최초로 연고지로 정한 팀은 1996년 연고지 공동화 정책으로 인해 안양으로 이전하게 된 안양LG치타스 입니다.
안양LG치타스의 연고이전 이후 프로팀창단을 위한 노력에 대해서는 작년에 개봉한 수카바티:극락축구단 영화를 참고하시면 그 과정에 대해서 잘 나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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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oix4y0h
1일전
아냥인양 : 1987년은 광역연고지가 실시되던..
감사합니다! 덕분에 광역연고지의 개념을 이해했습니다.
ScummoB
2일전
1. 그 시절 포함. 1969~1983년 즈음의 기억을 갖고 있는 분들을 온라인에서 찾는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입니다. 안양시청을 통해 협조를 구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2.1996년 이전, 연고개념은 없다 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연고지가 형식상 있긴 했지만, 명분일뿐 전국을 떠돌며 경기를 했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연맹에 문의 하시면 될겁니다.
3. 안양 LG 치타스(LG 안양 치타스라는 구단명칭은 없었습니다)는 해체한적이 없고 연고지와 팀명만 바꾼채 그 도시로 연고지를 이전 한 것입니다.
RED를 중심으로 다양한 단체가 연대해 꾸준히 안양시에 창단에 대한 각종 정보를 제공했으며 또 한 시민들은 상대로 서명운동 등 지속적인 활동을 했습니다. 시에서 반대 했다기 보다는 구단 운영에 따르는 재정적 부담으로 '때를 기다려보자' 라는 요지의 답변이 오랜시간 지속 되었었습니다. (위에 아냥인양님 말씀 처럼 수카바티 극락축구단 영화를 보시고 참고 하시면 도움이 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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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oix4y0h
1일전
ScummoB : 1. 그 시절 포함. 1969~1..
감사합니다! 시청과 연맹에 마저 연락해보겠습니다. 또한 본문에 이름 고치고 역사에서 틀린 부분 고쳐놨습니다.
마하반야보라밀
1일전
3번은 수카바티 극락 축구단 영화 참고하시면 틀 잡기에 좋을겁니다.
그리고, 해체한 적 없어요. 팀 명도 틀리셨고요. ㅡㅡㅡㅡㅡㅡㅡ 바로 수정하신 듯. 건승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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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oix4y0h
1일전
마하반야보라밀 : 3번은 수카바티 극락 축구단 영화..
넵 안그래도 축구단 영화에 red + 시민들의 노력이 잘 보이더라고요! 또한 본문에 이름 고치고 역사에서 틀린 부분 고쳐놨습니다.
w
weud9m10
1일전
모쪼록 우리팀을 주제로 발표하시니 잘 하시고 좋은 학점 받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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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oix4y0h
1일전
weud9m10 : 모쪼록 우리팀을 주제로 발표하시니..
감사합니다!
안
안양죽여버려북패
1일전
이런 분들때문에 저희도 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60-80년대 안양축구 역사는 안양시축구협회가 큰 도움을 줄수 있을거같습니다.
70년대 후반 안양공고를 졸업하신 저희 큰아버지께 여쭤봤습니다 안양공고 축구부는 전국적으로 많은 축구 꿈나무들이 가고싶어하던 명문 축구부였으나 고교경기를 보러다니던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당시 안양을 연고로한 프로팀은 없었기때문에 축구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크진 않았습니다 안양인들이 본격적으로 축구를 보러다니기 시작한건 안양LG치타스 창단 이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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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qywzusk
1일전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https://newslibrary.naver.com/search/searchByDate.naver)에서 검색해서 찾는 방법도 추천드립니다. 검색칸에 "안양 축구" 검색하시면 해당년도에 어떤 기사들이 써졌는지로 가름 가능할 수 있을겁니다! 잠깐 찾아봤는데도 여러게 나옵니다~
p
power
1일전
최대호 시장님의 공약이 나오게 된 계기가 팀을 잃은 서포터들의 적극적인 요청입니다. 축구를 좋아하던 최시장은 안양에 팀을 잃고 방황하던 서포터인 A.S.U. RED의 적극적인 구애로 팀 창단을 공약으로 내거셨고 시장 당선 후에 그 공약을 이뤄내셨습니다.
안양LG치타스의 연고이전 이후 프로팀창단을 위한 노력에 대해서는 작년에 개봉한 수카바티:극락축구단 영화를 참고하시면 그 과정에 대해서 잘 나와있습니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입니다.
안양시청을 통해 협조를 구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2.1996년 이전, 연고개념은 없다 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연고지가 형식상 있긴 했지만, 명분일뿐 전국을 떠돌며 경기를 했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연맹에 문의 하시면 될겁니다.
3. 안양 LG 치타스(LG 안양 치타스라는 구단명칭은 없었습니다)는 해체한적이 없고
연고지와 팀명만 바꾼채 그 도시로 연고지를 이전 한 것입니다.
RED를 중심으로 다양한 단체가 연대해 꾸준히 안양시에 창단에 대한 각종 정보를 제공했으며
또 한 시민들은 상대로 서명운동 등 지속적인 활동을 했습니다.
시에서 반대 했다기 보다는 구단 운영에 따르는 재정적 부담으로 '때를 기다려보자' 라는 요지의
답변이 오랜시간 지속 되었었습니다.
(위에 아냥인양님 말씀 처럼 수카바티 극락축구단 영화를 보시고 참고 하시면 도움이 될겁니다)
틀 잡기에 좋을겁니다.
그리고,
해체한 적 없어요.
팀 명도 틀리셨고요.
ㅡㅡㅡㅡㅡㅡㅡ
바로 수정하신 듯.
건승 기원합니다:)
저희도 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60-80년대 안양축구 역사는 안양시축구협회가 큰 도움을 줄수 있을거같습니다.
아마 이 기사를 읽으셨을 것 같긴한데
이 기사를 쓰신 최병렬 선생님을 직접 뵙는 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다이렉트로 연락처를 알려드리긴 그렇고
페북 계정 알려드릴게요.
의도를 말씀하시고 메세지 보내시면
아마 만나주실겁니다^^
안양공고 축구부는 전국적으로 많은 축구 꿈나무들이 가고싶어하던 명문 축구부였으나 고교경기를 보러다니던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당시 안양을 연고로한 프로팀은 없었기때문에 축구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크진 않았습니다
안양인들이 본격적으로 축구를 보러다니기 시작한건 안양LG치타스 창단 이후 입니다.
축구를 좋아하던 최시장은 안양에 팀을 잃고 방황하던 서포터인 A.S.U. RED의 적극적인 구애로 팀 창단을 공약으로 내거셨고 시장 당선 후에 그 공약을 이뤄내셨습니다.